치매 치료에 새 길이 열리고 있다. 치매 중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은 20년간 신약이 없었다가 최근 대안이 등장했다. 일본 제약사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신약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일본에 이어 국내에서도 허가를 받아 지난달 출시됐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나쁜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를 공략한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레켐비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막 섬유질을 형성한 상태를 공격한다. 섬유질이 모여 덩어리가 되기 전에 손을 쓰는 만큼 초기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나 초기 알츠하이머병 단계 환자에만 쓸 수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대학병원이 각각 내부 절차를 거쳐 이달부터 레켐비를 치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기존 약제와 전혀 다른 원리의 신약이 등장해 환자와 의료진의 기대도 남다르다. 조선비즈는 문소영 대한치매학회 학술이사(아주대병원 신경과 교수)를 지난 3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외래진료실에서 만나 새 치료제 도입의 의미와 치료·관리 방안을 들어봤다.
문 교수는 “그동안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손상된 세포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물질을 보충해주는 원리였는데, 이와 달리 레켐비는 질환의 초기 단계에서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는 치료법”이라며 “레켐비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 치매 진행을 초기 단계에서 완화시킨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레켐비는 새로운 원리의 치료제인 만큼 부작용 우려도 있다. 이미 세계 의학계에 뇌가 붓는 뇌부종과 혈관이 터져 뇌출혈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보고됐다. 이 때문에 레켐비 치료를 시작한 환자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으로 뇌를 주기적으로 관찰하며 치료를 진행한다. 의료진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반드시 치료의 기대 효과와 위험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문 교수는 부작용에 대해 “벽지를 20년간 붙여뒀다가 떼어내려고 하면, 깨끗하게 떨어지지 않고 손상되거나 찢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으냐”며 “마찬가지로 약 20~25년 동안 뇌혈관에 축적돼 있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려고 하면 이 과정에서 보고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치료제의 임상적 이점이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효과가 커 부작용을 감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된 이후에야 치료를 진행했다”며 “레켐비는 초기 단계에서 질병 진행을 늦춘다는 점이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문 교수와 일문일답. 문 교수는 인터뷰에서 성분명으로 설명했으나, 기사에는 독자 편의상 제품명으로 서술했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의 진단과 치료는 어땠나.
“동네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 대학병원으로 가서 가장 먼저 진행하는 것이 ‘정밀 인지 검사’다. 환자가 느끼는 기억력 저하가 병적인 상태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같은 연령대와 학력을 가진 표본 군과 비교해 환자가 또래 대비 어느 정도로 기억력이 저하됐는지 객관적으로 측정한다. 경도인지장애나 치매가 의심되는 결과가 나올 경우, 추가 검사를 진행한다. 혈액 검사는 빈혈이나 갑상선 이상, 비타민 결핍 등 기억력 저하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
뇌 MRI 영상은 뇌가 위축됐는지, 뇌경색(뇌혈관이 막힌 상태)이나 뇌출혈 등 구조적 이상이 있는지 보여준다. 또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을 진행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축적됐는지 확인한다. 추가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가능성이 높은 유형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검사를 통해 환자가 경도인지장애인지, 치매인지 판별한다. 치매라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것인지, 혈관성 치매로 인한 것인지 알아본다.”
–레켐비 도입 이후 치료법은 어떤 차이가 있나.
“기존 치료제는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집중력과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의 농도를 높여주는 방식이다.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이라고 하는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가 사용된다. 기존 치료제가 손상된 세포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물질을 보충한다면, 레켐비는 질환의 초기 단계에서 발병 원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초기 알츠하이머병으로 진단되면 기존 약물 치료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레켐비와 같은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고려할 수 있다.”
–혈관성 치매에는 어떤 치료제가 사용되나.
“혈관성 치매 자체를 위한 약제는 없다. 혈관성 치매는 뇌경색이나 뇌출혈과 같은 혈관 문제로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는 이런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뇌경색 예방을 위해 항혈소판제을 쓰거나, 뇌출혈 경험이 있으면 고혈압과 당뇨병 관리를 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다.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를 혈관성 치매 치료에 사용하는 국가도 일부 있다. 한국도 이 중 하나였지만 재평가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는 혈관성 치매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지 기능 개선 약물은 국내에서 허가되지 않았다.”
–레켐비 치료비가 연간 2000만~3000만원 수준이라고 들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우선 보험 적용 여부가 다르다. 일본은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미국도 대부분 건강보험이나 사보험이 치료를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다. 국내 치료비는 병원마다 상이하지만 50㎏ 기준 연간 약 2000만원, 70㎏ 기준 3000만원으로 예상된다.”
–레켐비도 알츠하이머병을 완치하지는 못하는데 비싼 편 아닌가.
“영어로는 증상 악화를 늦춘다는 의미로 ‘슬로잉 다운(slowing down)’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더라도 세포 손상이 지속되기 때문에 증상 악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경제적 문제와 약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해 치매 진행을 초기 단계에서 완화시킨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삶엔 결코 작지 않은 효과를 준다. 요즘 한국에서 70대 초반은 취미 생활이나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연령이다. 이들의 자녀는 30~40대로 사회생활이 활발한 시기로, 부모를 돌보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조기 단계에서 발견하고 질병 진행을 늦출 수 있다면 환자 삶의 질은 물론 가족의 부담까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레켐비 비용은 많이 들지만 환자를 찾기가 다른 나라보다 유리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은 검사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전국적으로 치매안심센터가 잘 구축돼 있어 경도인지장애와 같은 초기 단계의 상태를 보다 조기에 발견하기에 용이하다. 일본은 아직도 유전자 검사가 보험 적용이 안 된다. 우리는 급여가 적용돼 치료 과정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MRI 보유 병원이 많지 않아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MRI 검사가 가능해 치료 과정의 연속성을 유지하기도 유리한 환경이다. 한국이 치매 관련 진단과 치료 환경에 용이한 의료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레켐비와 같은 신약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레켐비 허가의 근거가 된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좀 더 쉽게 설명해 달라.
“레켐비 투여군이 위약군과 비교해 인지 기능 하락 속도가 18개월간 약 27% 줄어드는 효과가 관찰됐다고 한다. 쉽게 표현하면, 레켐비를 약 2년간 투여했을 때 질병의 진행을 약 6개월 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레켐비 임상 3상은 평균 71세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약 2년 동안 약물을 투여했을 때 환자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을 그만큼 연장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레켐비 승인을 권고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럽은 의약품 가격 대비 치료 효과를 좀 더 깐깐하게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재정 부담을 고려해 고가 의약품이면 치료 효과가 완치 수준으로 확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에 레켐비가 질환 진행을 27% 정도 늦춘다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약물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켐비의 뇌부종 발생률은 3상 임상 연구 데이터를 봤을 때 아주 심각한 부작용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3상 임상 연구의 평균 나이가 71세인데, 해당 연령에서 연구 기간 레켐비를 사용하지 않아도 작은 뇌출혈이 발생했다. 뇌출혈보다는 뇌부종이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며 뇌부종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면역 반응으로 추정된다. 다만 부작용의 발생 비율이 낮더라도, 한 건의 부작용이라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환자의 위험 요인을 사전에 파악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최근 대한치매학회가 발표한 레켐비의 적절한 사용 권고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레켐비가 새로운 치료제인 만큼 안전한 사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작성됐다. 먼저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권고안과 사용지침,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조건 등을 참고해 구성했다. 주요 내용은 안전을 위한 주의사항과 특정 환자군에서의 모니터링 지침이다. 레켐비는 뇌부종과 뇌출혈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MRI를 촬영해 위험을 평가해야 한다. MRI에서 발견될 수 있는 중요한 소견으로는 미세 뇌출혈이 5개 이상, 큰 뇌출혈이 1개 이상, 또는 표재철침착증(Superficial Siderosis) 등이 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면 약물 사용을 중단하거나 보다 신중히 치료가 진행돼야 한다. 또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거나 인공심장박동기를 가진 경우, 혹은 자가면역질환이나 간염 등의 병력이 있는 환자들은 반드시 주치의와 충분히 상의 후 치료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환자들이 레켐비를 통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권고안의 목표이다.”
–뇌부종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5차, 7차, 14차마다 MRI 촬영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정기적인 검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앞서 말한 부작용은 초기에 많이 생기기 때문에 약물 투여 시 초기 단계에서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뇌출혈의 경우 단순히 한 부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부위에서 발생하거나 심각한 양상이 나타나는지를 관찰해야 한다.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전에는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더라도 치료와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신경과학회에서는 권장되지 않았는데, ‘APOE4′ 유전자형이 뇌부종 발생의 주요 예측 인자로 밝혀지면서 유전자 검사도 주요 검사로 진행되고 있다. APOE4 유전자가 있는 환자는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뿐 아니라 뇌부종과 같은 부작용의 위험도 높아진다. APOE4 유전자가 하나 있는 경우, 부작용 위험이 약 2배 증가하고, 두 개가 있는 경우에는 약 6배 높아진다. 때문에 APOE4 양성 환자에게 약물 치료를 결정하기 전에 철저한 논의와 동의 과정이 필요하다. 위험도가 높은 환자라 하더라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제거가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반응이 발생하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알츠하이머병과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한 말씀해달라.
“레켐비 도입으로 기대감과 무거운 마음이 공존한다. 초기 단계에 치료를 진행할 수 있어, 질병 진행 경과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다. 반면, 새로운 치료제를 기다리다가 이미 질환이 중기 이상으로 진행된 환자는 기준에 맞지 않아 치료를 권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무거운 마음이 든다.
치매는 질환을 대하는 가족의 태도에 따라 환자의 상태도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화초를 사랑과 관심으로 가꾸면 잘 자라지만, 무관심하거나 스트레스를 주면 쉽게 시드는 것과 비슷하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환자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름답게 질환을 앓는 방법에 대해 공유했으면 좋겠다.
또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와 주간보호센터를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다양한 활동과 사회적 교류를 통해 환자의 뇌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상 행동이 나타나거나 환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하기를 바란다. 적절한 약물 치료나 국가적 지원을 통해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